논둑의 봄

 계란 간장 조림 한 점, 엄마의 손맛이 입 안에 들어왔다. 그 맛이 시간을 데리고 왔다. 사탐말 논 옆, 나는 다섯 살, 아버지는 봄 볕 속에서 일하는 척, 사실은 나를 지키고 있었고. 엄마는 삶은 계란을 내려놓고 형의 소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. 그 순간, 나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별을 배웠다. 고랑에 자라던 머루, 기억 속의 그림자처럼 희미했는데 형이 말해줬다. "그거, 니네 논 옆에 자라고 있던 거야." 형은 이제 없다. 봄은 또 오고, 나는 그때보다 훨씬 커졌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곁을 지키고 싶다.

반리만자로의 고양이

 반월의 바람은 오늘 따라 유난히도 춥다. 4월이라지만, 겨울의 끝자락이 남은 듯 옆 야산을 스미는 바람결. 창밖을 보니 작은 고양이 하나, 청춘의 그림자 같은 발걸음으로 어슬렁, 어슬렁— 먹이를 찾는다. 배고픔보다 호기심이 앞서는 눈빛. 그 눈엔 세상이 다 새로울까, 아니면 세상이 너무 낯설어 무서울까. 나는 따뜻한 커피 한 모금, 그 아이는 차가운 흙냄새 한 숨. 창틀 너머, 우리는 닮았다. 각자의 자리에서,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를 견디고 있는 중. 바람은 오늘도 그 아이를 흔들고 나는 창가에서 그 흔들림을 지켜본다.